PRESS 2009/02/04 11:46
[2009.01.31.(토)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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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2007/12/12 20:12

2007.08.18(토) PBC 라디오 '열린세상오늘 이석우입니다'
53분동안 방송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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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피에는 내용은 간단하게 나옴-




김홍신의 대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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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2007/12/12 20:04
푸르지오 [인터뷰] 9+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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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인터뷰 중 사진이 제일 마음에 들었던 인터뷰 기사




김홍신의 대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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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뉴스파노라마' 녹음.

선생님 댁에서 녹음을 한다고 하길래 스튜디오도 아닌데 어떻게 하나 싶었는데,

참으로 간단하더군.

좋은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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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진행자인 앵커 박경수 기자






인터뷰 하기 전, 심도깊은 '발해'와 관련한 이야기.

기자 초년병 때 선생님을 뵌 적이 있다는 앵커님. 두 분 기억을 회상하시며 서로 반가워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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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댁에 가면 누구나 거치는 과정



 

매우 자연스럽게 거치는 과정이다.

'발해' 공부하기.

대화가 '대발해'이다 보니, 역사적으로 오류가 있는 부분 등을 이야기하다보면 역사 공부 삼매경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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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때 역사를 공부하셨다는 앵커님.



 


10권 마지막에 있는 참고자료를 면밀히 살펴보셨다.

혹시,, 오탈자 발견한 건 아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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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녹음을 시작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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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한 말씀 하시죠.

                   


김홍신의 대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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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N 문학관 촬영 날.

신림동에 있는 방송국 찾느라 난 완전 길에서 헤맸다.

100% 정확도를 자랑하던 나의 방향 더듬이는 이제 쇠퇴하여, 잘 모르는 동네에 가면 헤매기 일쑤다.

방송국을 코 앞에 두고 얼마나 뱅뱅 돌았는지 모른다.

겨우겨우 도착. 나보다 늦게 출발하신 선생님은 이미 도착하셔서 분장도 다 끝내고 계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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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선희 선생님과 이 날의 진행자 손승희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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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화 시작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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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화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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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smooth하게 진행된 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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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콘티입니다.

                                               



김홍신의 대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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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2007/11/24 16:59
(서울신문 2007.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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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신의 대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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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2007/11/24 15:00
(KBS 1TV 뉴스라인 2007.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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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흣~

다시 봐도 감격스럽다. 선생님 뒤로 보이는 우리 책 표지.

가슴 뭉클. 다시 봐도 좋아.

이 캡처는 울 회사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있는 만능 작가 김C가 해 주고 있다. 우리 회사의 음성적인 미디어 부장에게 감사의 표시하는 바. ^_^

thanks!!



김홍신의 대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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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2007/11/24 14:54
(한국일보 2007.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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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신의 대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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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가 한참 진행되는 동안 사라진 사진 기자님.
'어디 가신 거지?'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땀을 고슬고슬 흘리면서 들어오셨다.

서재에서 인터뷰가 끝나고 난 후, 밖으로 나왔는데
그 짧은 시간 동안 선생님 댁 근처에 사진찍을 만한 곳들을 잘도 찾아 놓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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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찍으려고 선생님 포즈 취하고 계실 때. 지나 가시던 동네 아주머니. 슬쩍 바라보시다가- 선생님께서 '아, 쑥쓰럽네~'하시니 갑자기 '호호호호'하고 웃으면서 가셨다. 그 모습에 우리 모두 '하하하하'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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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기자님,, 빤쯔 보일 뻔 했어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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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에게 직접 포즈 시범을 보이던 사진 기자. 선생님이, '이건 긴 사람들이나 하는 거지.' 하시니까, '음.. 이렇게 하시면 길~어 보이십니다.' 라고 답했다. ㅎㅎ 재미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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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진 괜찮게 나왔으면, 선생님 프로필 사진으로 써야겠다. 왠지 안성기 필 나는 걸?

                                               




김홍신의 대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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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댁에서 3시간 반 정도의 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

난 요새 거의 선생님 비서.
덜렁대서 종종 야단맞지만- 그래도 일 있을 때마다 에스코트(?) 해 드려야지.

과연 나의 보호를 제대로 받고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ㅎㅎ

신문 인터뷰 할 때랑은 다르게 조명 기구까지 화려하게(?) 등장하여 진행된 인터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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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시간에 5분 지각했는데, 줄무늬 블라우스를 입으신 기자님. 나에게 눈길 한 번 안 주셨다. 고개 한 번만 돌리셔서 인사 한 마디만 해 주셔도 좋았을텐데.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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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인터뷰 할 때는 보지 못하는 저 조명기구. 나도 전에 잡지사 인터뷰 할 때 나온 사진은 무지 맘에 들었었다. 역시,, 잡지는 비주얼이 확실히 중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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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쪽에서는 인터뷰가 한참 진행 중이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선생님이 쓰신 원고 노트('김홍신의 대발해'가 원고지 12,000매 분량이다.)를 열심히 찍는 사진기자. 선생님 만년필, 안경 등을 노트 위에 놓고 작품 사진 찍고 계시는 중. ^^ 그리고 열심히 노트하고 있는 우리 홍보팀의 장 과장의 노트와 살짝 나온 손가락 끝. 난- 불나는 내 전화기를 들고 방을 왔다갔다 하다가.. 결국 한 30분 넘게 밖에서 전화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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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얘기하실 땐 눈이 반짝반짝해지시는 울 김 쌤! 저 책들 사이에 있는 '김홍신의 대발해' 책. 빛난다. 내 눈에는 이 책만 반짝반짝 빛나는데,, 어떠신가요, 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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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댁 정원에서. 작지만 아담하고 정갈하고. 매우 청량해 보이는 군. ^^

                                                



김홍신의 대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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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2007/11/23 23:00
(연합뉴스 2007.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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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신의 대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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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리샘
PRESS 2007/11/23 21:12
(중앙일보 2007.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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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금요일에 근 4시간 동안 한 인터뷰가 이렇게 기사로 나왔다.

발빠른 중앙일보 손 기자님이 책 나오는 걸 어찌 아시고
연락을 하셔서 선생님과 인터뷰를 하시게 됐다.

책 나오기도 전에 이렇게 기사 나오니까 신 나는 걸? ^^

여러분~ <김홍신의 대발해>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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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신의 대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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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리샘
PRESS 2007/11/23 19:30

(문화일보 2007.06.06 - 김승현의 문화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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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소설’ 9권째 집필 김홍신

최근 중국이 일본에 발해의 돌비석 ‘홍려정비’의 반환을 요구한 데 이어 발해의 수도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 유적을 복원, 내년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고구려에 이어 발해까지 자신의 역사에 편입하려는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이 점차 가속화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 같은 중국의 역사도발의 저의를 파악하기 위해 10년 가까이 발해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김홍신 전 국회의원을 만났다. 김 전의원은 베스트셀러 소설 ‘인간시대’의 작가에서 정치가로 변신해 15, 16대 의원을 역임하며 ‘가장 열심히 일하는 정치인’으로 꼽혔으나, 지난 총선에서 고배를 마신 뒤 다시 ‘본업’인 소설가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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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서울 서초동 자택 2층 서재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문화일보 최고”라며 “‘발해인의 발’기사 멋있었다”라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문화일보 1면에 보도된 발해관련 기사에 대한 칭찬에 이어 그는 중국의 ‘홍려정비’ 반환기사, 상경용천부 관련기사 신문스크랩을 꺼내들고 다짜고짜 발해의 이야기로 들어갔다. 온통 관심이 발해에 집중돼 있는 것 같았다. 정치가의 선동적 열기도 느껴지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순수함이 있었다. 이상을 꿈꾸는 소설가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서기 732년 발해 2대황제 무황은 베이징(北京) 근처에까지 진군해 갔습니다. 당 현종이 그때 남북 400리길을 길목마다 돌로 울타리를 쌓아 막았다고 했습니다. 당이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입니까. 당시 세계 최강대국입니다. 그런 나라의 주요도시를 위협할 정도였으니 얼마나 대단한 위세였겠는지 상상해 보십시오.”

그는 이 이야기가 한국역사서가 아니라 중국 역사서 ‘책부원구(冊府元龜)’에 나온다고 강조했다.

“당시 발해 장문휴 장군이 지금의 산둥반도 옌타이에 쳐들어가 ‘석전(石田)’을 만들어 버렸다고 나와 있습니다. 완전히 초토화시켜 버린 거지요. 그때 당 현종이 인질격으로 당나라에 있던 신라왕족 김사란을 시켜 신라 성덕왕 김흥광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발해를 치면 특별한 상을 내리겠다며 김유신의 아들 김윤중이 용맹하다고 들었는데 그를 보내라고까지 합니다. 정확하지 않지만 그때 김윤중이 5만명 정도의 군사를 데리고 가는데 군사의 절반 이상을 잃는 대패를 당하지요. 발해는 그렇게 강한 나라였습니다.”

이렇게 끌려가다는 발해역사이야기 밖에 아무것도 못 들을 것 같다. 발해를 주제로 이야기하려 왔지만 소설의 내용만 들으러 온 것은 아니다. 중국의 정치적 의도가 뭘까로 화제를 돌렸다. 결국 북한은 무너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남한에 의한 한반도의 통일을 중국이 결코 달가워할 리가 없다.

전통적으로 ‘오랑캐로 오랑캐를 제어하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입술이 없어지면 이빨이 시린’ 순망치한(脣亡齒寒)을 기본외교 노선으로 하고 있는 중국이 잠재적 적국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남한이 한반도를 통일, 중국과 국경을 맞대는 것을 그냥 두고 보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북한의 하드크래시(hard crash·경착륙)와 같은 유사시 중국이 개입할 명분 마련을 위해 고구려는 물론 발해사까지 중국의 역사에 편입시키는 동북공정을 펼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물었다.

“그렇습니다. 바로 잘 봤습니다. 1998년 의원자격으로 중국을 갔을 때 중국이 동북공정을 강력히 추진하는 배경이 느껴졌습니다. 이것을 국민에게 알려주지 않으면 정말 큰일나겠다 싶었습니다. 북한땅이 중국땅이 되겠다는 절박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자료를 모으며 공부했습니다.”

그는 “현재 중국이 북한에 철로를 놓고 있고 장마당 물건의 90% 중국 물건”이라며 “이 같은 상황에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걱정스럽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중국은 변경 연구에 있어서 최고수준”이라며 “55개 소수민족 등 변경 민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보화, 세계화 시대에 중국의 통합을 위해서”라고 말했다.

“중국은 땅이 큽니다. 이제 인터넷 등이 전국에 깔리면 통제가 불능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티베트족, 조선족 등 정신적 가치가 우월한 민족은 독립한다고 중국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이들을 필두로 다수 민족이 독립해 나가 중국이 쪼개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미 그것을 구 소련의 붕괴에서 철저히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발해의 역사는 사실 잊어진 역사일지 모른다. 삼국시대 이후를 통일신라시대라고 부르는 것이 단적인 예다. 그래서 최근 통일신라시대가 아니라 발해와 신라, ‘남북국시대’라는 주장이 역사학계에서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이를 위해 “역사교과서 개편도 중요하지만 더 효과적인 것은 소설입니다. 정확한 사료를 입력시켜 주고 역사를 하나하나 뒤집어 쓰는 것, 우리로 보면 바로 쓰는 것이죠. 이것이 제가 발해소설을 쓰기 시작한 이유입니다.”

그는 소설을 쓰기 위해 이미 언급한 ‘책부원구’를 비롯해 ‘신당서(新唐書)’ ‘구당서(舊唐書)’ 등 중국 사료와 ‘단기고사(檀奇古史)’와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 국내외 사료 136책 400여권을 참조, 발해사를 복원해 냈다. 왕조 연표에서부터 주요 사건을 표로 만들어 서재에 빼곡히 붙였다. 그 사료의 뼈대를 뒤집어 상상의 살을 붙인 것이다.

“중국은 철저히 자기가 최고라는 중화사상에 젖어 있습니다. 그들이 침략하면 가장 먼저하는 것이 역사왜곡 아닙니까. 설인귀가 고구려와 백제를 침략해 나라의 서고부터 불살랐습니다. 그렇게 없애놓고 자신들의 역사에는 자기들 중심으로 거꾸로 기록해 놓습니다. 지금 남아있는 역사는 그런 자료들 뿐입니다. 사료를 뒤집어 해석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단적인 예로 연개소문을 들었다. 연개소문은 중국 역사에서 ‘연(淵)’씨가 아니라 ‘천(泉)’씨로 돼 있다는 것이다. ‘연’자가 당 태종 이세연의 이름에 쓰인 글자이고, 당태종을 죽음에 이르게 한 장본인이 연개소문이기 때문에 성을 ‘천’씨로 바꿔버렸다는 것이다.

“물론 ‘단기고사’같이 강단사학자들이 인정하지 않는 책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용을 보면 결코 그냥 만들 수 없는 책입니다. 형태는 위서이지만 내용만은 충분히 진실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역사를 철저히 왜곡시켜 놨는데 그들의 자료를 뒤집어 보고 가능한 모든 국내 자료를 해석해 제대로 역사를 살려놔야지요.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식민사관에 철저히 길들여진 결과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2004년 총선에서 패한 뒤 공직 제의가 있었으나 고사하고 바로 소설작업에 들어갔다. 그렇게 쓴 것이 8권을 넘어 9권째다. 권당 1000페이지 분량이고 모두 10권으로 계획하고 있다. 11권은 참고한 자료들을 모은 색인집이다. 그는 “올 가을쯤 완성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앞에 책들을 미리 내자는 출판사측의 요구도 있었으나 한꺼번에 내놓자고 미루고 있다. 8권은 이미 컴퓨터작업까지 끝났다. 엔터키만 누르면 지금이라도 책이 돼서 나올 수 있는 상황이다. 마지막 장면이 궁금했다.

“마지막 발해황제 대인선이 목에 밧줄을 걸고 한 손에는 밧줄을 또 한손에는 양을 끌고 소복을 한 채 나옵니다. 황후도 함께 소복을 하고 나오지요. 이 때 적장 역시 부인과 함께 말위에서 무릎 꿇은 발해황제의 항복을 받습니다. 그리고 발해황제에게 자신이 탄 말의 이름을, 황후에게 자신의 부인이 탄 말의 이름을 내려줍니다. 한 때 한 나라의 황제를 짐승취급한 겁니다.”

그는 이같이 비참한 결말에 대해 “교훈을 주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발해는 중국 본토를 위협한 사방 5000리의 나라였습니다. 당시의 중국의 10리는 4㎞가 아니라 5.59㎞였습니다. 고구려의 몇배가량 되는 강대한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가 지금은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내홍과 이에 따른 외침입니다. 내홍이 없으면 외침을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지만, 갈등과 분열의 내홍이 벌어지면 외침에 대항할 힘을 잃어버립니다. 그것이 제가 발해소설을 쓴 이유입니다.”

문화부장 김승현



김홍신의 대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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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2007/11/23 19:26

(매일경제 2007.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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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신 전 의원(59)은 요즘 잠도 마다하고 맹렬히 쓰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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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를 소재로 한 10권짜리 역사소설이다.

벌써 2년을 넘긴 일이니, 2004년 총선 낙마 직후 시작한 것이 된다.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어떻게 8년간의 정치인 생활을 그렇게 훌훌, 송두리째 잊고 곧바로 다른 일을 시작하느냐는 것이다.

실존적인 상실감까진 아니더라도, 세속적 의미의 상실감을 피하긴 어려웠을텐데….
"많이들 신기해 하세요. 그런데 그런 거 전혀 없었습니다. 그냥 시작했어요."

작가 김홍신은 4년 전 담배 끊었던 얘기를 들려준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법륜스님이 계시는 수련원에 들어갔을 때 일인데, 금연이 그렇게 어렵더란다.
그런데 스님이 문득 "물컵이 뜨거우면 내려 놓으라!" 하시더란다.
그때 담배를 끊었고, 지금까지 안 핀다.
김홍신은 "지금 총무원장 하시는 지관스님 밑에서 젊은 시절 공부를 한 적도 있다"며 "그런 공부들이 정치의 기억에 얽매이지 않게 해주는 것도 같다"고 했다.

지난 21일 찾아간 서울 서초동 김홍신의 자택 2층 집필실은 발해 관련 역사서로 빼곡하다.
책장은 물론이고 책상 위 방바닥까지 색색의 메모지 꽂힌 역사서 천지다.
그리고 책상 위에 대학 노트 한 권. 그 위에서 발해의 웅혼한 역사가 쉴새 없이 꿈틀거리고 있는 중이다.

작가가 흥분한다.
"거란 쪽 기록에 '평양성을 함락하면 남자를 다 죽이라'는 말이 나와요. '발해 남자 셋이 모이면 호랑이도 잡는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발해가 그런 나라였어요. 그런데 발해 자체 기록이란 게 3대 문왕의 공주들 무덤에서 발굴된 비문 1400여 자뿐이에요. 발해에 관한 기록 중 99%가 중국 것입니다. 중국이 '발해는 말갈의 나라'라고 하니까, 그런 것처럼 돼버린 거죠."

발해를 소재로 한 역사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로서 그는 동북공정으로 상징되는 중국의 역사관에 대해 민감하다.
그는 "중국 학자들은 소련이 해체된 것처럼 중국도 언젠가는 해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그걸 막기 위해 지금 그렇게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발해 이야기가 담긴 그의 노트가 이미 30권에 육박한다.
10권 예정인데, 이제 9권 정도를 마무리했다.
그 동안 몸도 많이 망쳤다.

김홍신은 "87년쯤 근세사를 소재로 한 세권짜리 '내륙풍'을 쓴 적이 있지만 그때와는 비교가 안되는 작업"이라며

"지금도 정형외과, 한의원, 물리치료원에서 손을 치료해가며 쓰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손 아픈 게 문제가 아니다.
그는 구상하고 있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귀띔해 주며 "정말 가슴이 너무 아파요!"라고 말했다.
갑작스런 한숨을 터뜨렸다.

소설 끝에서 마지막 발해 황제 대인선은 목에 밧줄을 건 채 황후와 함께 무릎을 꿇는다.
그 앞에 선 적장은 발해 황제에게 자신이 탄 말의 이름을, 황후에겐 자신의 부인 말 이름을 내리게 된다.
그는 '김홍신의 대발해'가 출간되면 내년 초 인도에 잠깐 머물 생각이다.
붓다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쓰겠단 생각을 오래전부터 하고 있다.
정치판을 소재로 한 소설 '신 인간시장'이 먼저 나올 수도 있다.

[이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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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신의 대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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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리샘
PRESS 2007/11/23 19:20

2년 동안의 집필 끝에 탈고를 하신 후 가진 신동아와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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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e..

김홍신(金洪信·60) 전 의원을 다시 만난 것은 그가 2003년 9월 정기국회를 마치고 국회의원직을 그만둔 후 거의 3년 만이었다. 김홍신 의원실은 의원직을 그만두기 직전까지 대한적십자사의 혈액오염 사건을 터뜨리는 등 화제가 끊이지 않아 기자들의 출입이 잦았다.

지난 12월7일 오후 김 전 의원의 서초구 자택을 찾았다. 그는 몰라보게 수척했고 얼굴엔 세월의 흔적이 내려앉아 있었다. 2004년 3월 아내의 죽음, 그 한 달 후 17대 국회의원 선거(서울 종로) 낙선. 지난 몇 년간 그에겐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그런 그에게서 정작 세월을 훔쳐간 ‘도둑’은 1년6개월 넘게 공을 들인 발해 소설이다. 그는 2005년 여름부터 대학노트에 글을 쓰기 시작해 인터뷰 당일 새벽 3시쯤 13권, 200자 원고지 1만2000장 분량의 소설에 마침표를 찍었다. 제목은 ‘김홍신의 대발해’. 소설은 고구려가 망한 668년부터 시작해 발해가 망한 926년에 끝을 맺는다. 그는 발해 소설을 쓰기 위해 국회의원 시절부터 8년 이상을 매달렸다고 한다.

소설을 쓰면서 두문불출,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았다. 운동도 하지 않고 새벽까지 글쓰기를 하는 통에 오른팔에 마비증세가 왔다. 늘 웃는 낯이던 표정은 굳어 있었고, 볕을 못 쬐서 생긴 햇빛 알레르기 때문에 피부약을 바르고 있었다. 머리숱도 부쩍 줄어 있었다.

▼ 팔에 마비가 와 스테로이드 주사까지 맞았다면서 왜 수기(手記)를 고집하십니까.

“인호(소설가 최인호) 형과 약속한 게 있어요. 죽을 때까지 손으로 쓰자고. 서로 누가 먼저 배신하는지 지켜보고 있거든요, 하하.”


대제국 발해

▼ 발해와 관련된 유적, 유물, 기록이 드물어 취재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그랬습니다.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정혜공주 비문과 건국자 대조영의 동생 대야발이 쓴 ‘단기고사(檀奇古史)’가 고작입니다. 우리와 관점은 좀 다르지만 북한에서 나온 연구서적도 도움이 됐습니다.”

▼ 취재답사를 많이 다녔습니까.

“발해는 고구려보다 두 배 이상 넓은 영토를 가진 대제국이었습니다. 총연장 4300km에 사방 5000리(1리는 5.6km)에 달하는 대제국이었으니까요. 2005년과 2006년 여름 두 번을 다녀왔는데, 법륜스님과 고구려, 발해의 유적지부터 항일운동 유적지까지 다 훑었습니다. 발해의 첫 수도이자 시조산인 동모산은 일반인은 못 들어가는데 재수 좋게 올라갔다 왔어요. 정말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로 광활한 곳이었습니다.”

▼ 발해 소설은 언제부터 구상했습니까.

“1986년 처음 중국을 갔을 때 그곳 재야 사학자로부터 ‘중국이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뒤집으려 한다, 그래서 중국 역사에 편입시키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나중에 보니 이게 점점 사실이 되어가더라고요. 1998년 국회의원으로 중국을 방문했을 때 결심을 굳혔습니다. 이미 그때는 ‘동북공정’의 서막이 오르고 있었어요.”

발해 유적지에서 온갖 수소문을 해 기와 파편과 유물조각 등을 어렵사리 구해 들여오기도 했다.


말갈은 발해의 일부였을 뿐

▼ 현재 TV 드라마나 백과사전에 나오는 발해 역사에 틀린 부분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동모산에 이어 발해의 두 번째 수도인 상경용천부가 당(唐)의 수도 장안성을 그대로 축소했다고 하는데, 이는 중국 기록을 그대로 베낀 모화사관(慕華史觀)이 빚어낸 허구죠. 제가 직접 가서 성터를 둘러봤는데 성 축조 방식이 중국 성과는 딴판이에요. 무너진 성벽을 보니 상어 이빨처럼 내부가 뾰쪽하게 튀어나와 있더군요. 무너지면 무너질수록 적군이 올라오기 힘든 구조예요.”

▼ 많은 사람이 발해를 고구려 유민과 말갈의 통합국가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지배층은 고구려인들이었다는 거죠.

“발해의 시조 대조영(大祚榮)과 그의 아버지 대중상을 말갈인으로 기록한 ‘구당서(舊唐書)’와 ‘신당서(新唐書)’ 등 중국 기록을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신당서 발해 말갈전에 ‘대조영은 고구려 별종(別種)이다’는 문구가 있죠. 일부에서는 그냥 고구려 장수라고 얼버무리고, 한쪽에서는 말갈에서 귀화한 고구려인이라는 중국측 해석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대조영은 고구려 방계 왕족의 후손입니다. 고구려 왕의 성은 본래 높을 고(高)자를 썼어요. 세월이 흘러 후궁이 많이 생기고 거기서 나온 왕족이 늘어나니 왕족을 둘로 갈랐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겐 큰 대(大)자를 성씨로 내려줬습니다.”

▼ 대조영의 아버지 대중상은 ‘걸걸중상’이라고 알려져 있는데요.

“구당서는 대조영의 아버지 대중상을 걸걸중상(乞乞仲象)이라고 표기했습니다. 걸씨는 말갈의 성씨예요. 대조영의 부하였던 걸사비우는 말갈족 출신 장수거든요. 중국의 역사가들이 대중상의 이름을 바꿔놓은 겁니다. 그것도 ‘걸’자를 두 번 반복해 쓰면서까지.”

▼ 연개소문의 이름도 바꿨다면서요.

“중국의 역사 조작은 아주 유치합니다. 연개소문(淵蓋蘇文)을 사서에 천개소문(賤蓋蘇文)이라고 써놓았지요. 연개소문이 누굽니까. 수나라를 멸망시키고 당 태종을 죽게 한 인물이잖아요. 그래서 성을 천할 천(賤)자로 바꾼 겁니다. 고구려가 멸망한 후 대중상, 대조영과 함께 반란을 일으킨 거란족장 이진충(李盡忠)과 그의 처남 손만영(孫萬榮)은 이진멸(滅)과 손만참(斬)으로 이름을 바꿨어요. 후손까지 다 죽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결론적으로 발해는 고구려의 왕족이 세운 나라입니다. 발해가 고구려와 말갈의 통합체라는 설은 잘못된 것입니다. 말갈은 발해가 다스린 땅의 일부분이었을 따름이에요. 발해의 땅이 옛 고구려 땅을 모두 포함하는데, 고구려 멸망 30년 뒤에 말갈 사람들이 그곳에 들어와 살았다는 게 말이 됩니까. 300년 후라면 몰라도.”


대조영에 제사 지낸 천손(天孫)

▼ 좀전에 우리 역사가 모화사상에 젖어 있다고 하셨는데.

“이이제이(以夷制夷)라고 할 때 우리가 흔히 아는 오랑캐 이(夷)자를 보세요. 큰 대(大)자 안에 활 궁(弓)자가 들어간 형세입니다. 본래는 군자를 의미하는 글자였죠. 따라서 동이족(東夷族)은 ‘동쪽에 사는 군자의 나라’라는 뜻입니다. 번역에도 문제가 많았어요. 중국 사서에서 할 위(爲)자를 번역하면서 중국이 우리에게 보낸 국서는 ‘하라’라고 하고 우리가 중국에 보낸 국서는 ‘하옵소서’로 번역한 겁니다. 통탄할 일입니다. 소설에서 이걸 하나하나 바로잡았죠.”


▼ 소설의 하이라이트 부분은 어디인가요.

“발해의 창립 시기, 2대 황제 대문예가 만리장성 코앞인 마도산과 산둥반도 옌타이(등주), 베이징까지 쳐들어간 후 그 일대 400리를 쑥밭으로 만드는 대목, 나라를 강성하게 만드는 10대왕 선황 때, 마지막 황제인 대인선 무렵 등입니다.”

▼ 소설을 쓰면서 제사를 지냈다지요.

“2005년 여름 소설 쓰기를 시작하기 전, 고구려 국내성이 자리잡았던 중국 지안(集安)현 통천동(通天洞)에서 환인, 환웅, 단군, 대조영에게 제사를 지냈습니다. 산 정상에 있으면서도 앞뒤가 다 트인 이상한 굴인데 너비가 20m, 높이가 6m나 됩니다. 그곳에 서면 ‘하늘과 통한다’는 통천동의 의미를 알 수 있어요. 고구려와 발해의 왕은 이곳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 자신들이 하늘의 아들, 즉 천손임을 인정받았죠. 당시 하늘의 자손임을 주장하는 나라는 고구려뿐이었고, 발해가 이곳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것은 발해가 고구려의 역사를 이은 나라이며 중국과 대등한 나라였음을 보여줍니다.”


▼ 소설의 끝 부분을 좀 소개해주시죠.

김 전 의원이 원고를 읽기 시작했다.

“정월 정축일(926년 1월20일)…대인선의 왼손에 붓을 억지로 끼우고 장수 하나가 어수를 잡고는 어필을 남겼으니 이것이 곧 항복문이었다…. 야율아보기는 그 자리에서 황제 대인선에게 오르고, 황후 고담소에게는 아리지라는 이름을 하사했는데 그것은 야율아보기와 부인 순율이 타고 있던 말의 이름이 아니던가. 멸망한 나라의 황제와 황후는 짐승과 다름이 없었다…. 마침 눈발이 굵어지기 시작했고, 느닷없이 해동청 보라매 한 마리가 바람을 가르며 야율아보기를 향해 내리꽂혔다. 대원수 야율요굴이 휘두른 칼날에 매는 두 동강이 났다. 발해의 마지막 황제가 그토록 아끼던 사냥매는 그렇게 사라졌다. 마치 발해처럼.”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끝〉’자 밑에 보니 뭔가 한 줄이 더 씌어 있었다.

‘내 혼을 깨워 흔들며 2006년 12월7일 02시54분 드디어 끝내다.’

그는 “솔직히 글을 쓰면서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죽고 싶었다”고 했다. 그때마다 “이 길이 내 길이야” 하고 자기 최면을 걸면서 집필에 매달렸다고 한다.

▼ 소설의 시작과 끝이 다 민족사의 가슴 아픈 시기군요.

“교훈을 얻자고 그렇게 했어요. 작품을 쓰면서 우리를 포함해 각 나라의 멸망사를 훑어봤는데 비슷한 특징이 있었어요. 첫째는 좌우, 상하의 치열한 갈등과 분쟁입니다. 둘째는 상류층의 호화사치, 셋째는 지도층 인사들의 혼암(昏暗·어리석고 못나서 사리에 어둡다, 사회가 혼란스럽고 정치가 부패했다는 뜻), 넷째는 민심이반이 지나쳐 천심을 거스름, 다섯째는 외침(外侵)입니다. 우리는 IMF 관리체제 때 이미 외침을 당해 패망한 경험이 있지요. 요즘 전쟁은 총칼을 앞세우지 않는 경제전쟁입니다. 그러고도 정신을 못 차리니….”


선거 40일 전 출마 통보

▼ 요즘 지도층이면 김 전 의원이 정치할 때 친하게 지낸 분들 아닙니까.

“혼암의 원인을 어느 한두 사람에게서 찾을 수는 없겠죠. 다만 이런 얘기는 하고 싶습니다. 조선시대 상소문을 한번 읽어보라고. 읽어보면 끔찍하죠. 절대군주인 왕을 짐승 다루듯 해요. 이런 비판의 목소리를 현군은 받아들였지만 폐군(廢君)은 절대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대화 주제가 정치로 옮겨가자 김 전 의원은 “정계를 떠난 후 마음공부를 많이 했다”며 “비판하되 미워하지 않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했다.

▼ 2004년 4월 국회의원(서울 종로) 출마는 어떻게 결정됐습니까.

“2003년 10월 국회의원을 그만둔 후 발해 관련 자료를 찾느라 여념이 없었는데, 어느 날 정동영, 김한길 등 열린우리당 중진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처음엔 못 간다고 했죠. 정확히 총선 40일 전에 연락한 거예요. 애 엄마가 세상을 뜨는 바람에 일주일은 선거운동 못했지…어쩔 수가 없었어요. 비록 0.7% 차이로 당락이 갈렸지만 우리는 패배를 축제로 승화했습니다. 선거자금도 매일, 그것도 끝전 한자리까지 공개했고요. 후회는 없어요.”


“김홍신한테 돈 달랬다간…”

▼ 이젠 정치를 안 할 생각인가요.

“살다보니 본의 아니게 거짓말 하는 경우가 생깁디다. 국회의원 되기 전에 라디오 생방송에서 방송 중단에 대한 항의문을 읽어 파문이 일었는데, 어느 기자가 ‘스타가 돼 정치를 하려는 게 아니냐’고 묻길래 ‘쓸데없는 소리 마라. 내가 정치하게 생겼냐. 나는 언론의 자유를 위해 그랬다’고 했어요. 그런데 결국은 국회의원이 됐잖아요. 그 뒤로는 말을 함부로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면 되는 것이죠. 사실 정치를 하면서 현실적으로, 경제적으로 손해 많이 봤습니다.”

▼ ‘인간시장’은 최초의 밀리언셀러이자 스테디셀러 아닙니까. 인세 수입이 짭짤할 텐데요.

“국회의원이 되니까 책이 안 팔려요. 더욱이 국정감사 때마다 열댓명씩 와서 일했으니 어떻게 됐겠어요. 자료 수집하는 것도 그렇고. 전부 내 돈 썼어요. 보좌관도 2명 이상 썼고.”

▼ 사비(私費)를 털어 의정활동을 했다는 얘깁니까.

“알다시피 전국구 의원을 하면 당에 돈을 내잖아요. 그런데 저는 전국구 의원 두 번 하면서 헌금을 안 낸 유일한 의원입니다. 한번은 선배의원에게 ‘왜 나한테선 돈 안 받았어요?’라고 물었더니 ‘김홍신이한테 돈 달랬다 당 깨질 일 있냐? 네가 그냥 있겠어? 바로 갈겨버릴 거 아냐. 그러면 당도 이회창도 끝나는데…’하더군요. 따지고보면 공짜로 전국구 의원 됐는데 국민을 위해 세비 쓰고, 모자라면 사비 쓰는 게 당연하지 않나 합니다.”

▼ 당시 김홍신 의원실 출신 보좌관들이 요즘 잘 나간다고 하더군요.

“대부분이 낙선한 의원실에서 왔죠. 청와대 비서관으로 있는 친구는 당시 노무현 의원이 국회의원 떨어지면서 후원회장인 이기명씨가 다리를 놓았고, 국무총리실에 있는 친구는 김원웅 의원이 떨어지면서 보냈어요. 유인태 의원이 떨어지면서 여성 보좌관을 보냈고. 모두 보건복지쪽 전문가들이었지요.”

▼ 보좌관을 보낼 정도면 노무현 대통령과 그전부터 친했나 봅니다.

“제가 국회의원 되기 전에 글 쓰고 있을 때 후원회장인 이기명씨가 보자고 해서 갔더니 노 의원의 등산모임에 와서 강연을 좀 해달라고 했어요. 그렇게 했죠. 또 경실련 일을 하면서 정치개혁을 담당했는데, 그때 꼬마 민주당이 통합민주당이 됐습니다. 이철 의원이 불러서 모임의 사회도 보게 했고…그래서 압니다.”

▼ 2003년 9월 한나라당을 나올 때 왜 혼자 늦게 나왔습니까.

“사실 한나라당에서 나오자는 모임을 구성한 것은 저였지요. 그런데 저는 정기국회를 끝내고 나가야 할 몇 가지 이유가 있었어요. 그래서 이부영 선배를 비롯한 모임 의원들에게 ‘나를 밟고 먼저 가라’고 했죠. 당시 애 엄마가 병원에 있었는데 그때 그만두면 뒷바라지하기 힘든 상황이었고, 정기국회는 마치고 의원생활을 접는 게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약속대로 정기국회 끝나는 날 그만뒀습니다. 그 바람에 경실련과 ‘동아일보’가 주관한 의정활동 평가에서 1위를 한 것 아닙니까.”

▼ 보건복지부 장관 물망에 계속 올랐죠.

“주변에서 듣긴 들었는데, 그것도 기대한다고 되는 게 아니죠. 지금은 장관, 국회의원 하는 것보다 소설 쓰는 게 열 배는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해요.”

▼ 2006년 서울시장선거를 앞두고 김 전 의원도 거명된 것으로 압니다.

“그랬죠. 그런데 서울시장선거는 시민을 위한 일꾼을 뽑는 것이지, 인기인 투표를 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인기란 것은 금방 변하죠. 그때 저는 인기투표를 하면 안 된다고 반대했어요. 그런데 열린우리당이 먼저 인기투표를 시작했죠. 그러니 상대당도 급하니까 인기투표로 맞받아쳤고.”


“노 대통령, 지금도 늦지 않았다”

▼ 총선에서 떨어진 뒤 어떤 제의가 있었나요.

“사실 몇 군데 정부산하기관 이사장 제의가 있었어요. 연봉이 1억7000만원 안팎에 장관급에다 임기 3년이 보장된다고 해요. 어차피 ‘낙하산’ 소리 나올 거 아닙니까. 일단 발해 소설을 다 쓰고 난 후에 생각해보겠다고 했어요.”

▼ 만일 다음 대선에 출마하는 후보가 도와달라고 부탁하면 어떻게 할 겁니까.

“지금 뭐라고 말했다가 틀어지면 또 거짓말하는 것이니까 ‘몰라요’라고 할래요. 제가 발해 소설 마치고 나서 왜 쉬지도 않고 인도에 가려 하는지 아세요? 외부에서 끊임없이 연락이 오거든요. 핑계 댈 길이 없잖아요. ‘글 쓰고 있다’고 하면 먹혀듭니다. 다음 작품으로 불교 소재를 구상하고 있는데 기회가 되면 달라이 라마도 만나고 싶어서 가는 겁니다.”

▼ 노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행복한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년이면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눈을 크게 뜨고 국민이 뭘 원하는지만 따라가면 됩니다. 노무현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서 살면 됩니다. 자기를 가장 낮은 자리까지 내려놔야 해요.”

▼ 대통령은 남이 자신을 못살게 군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요.

“사람은 늘 ‘나는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화도 내고 그러지요. 그런데 남 탓을 하는 순간, 문제가 생깁니다. 자기가 항상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기 이익을 위해 살아가면서 백성을 위해서 살아간다고 주장하는 것,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남 탓을 하는 것, 어찌 보면 사람의 본성 같은 것인데 지도자는 이 세 가지를 버려야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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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리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