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회과학원은 만주의 우리 옛 역사를 중국 문화유산으로 등록하려 합니다. 왜 그들은 집요하게 동북공정을 진행하는 것일까요?"
20일 오후 4시30분 서울 서대문 국민권익위원회 강당. 100여명의 직원들은 소설가 김홍신(62)씨가 들려주는 만주 벌판에서의 우리 옛 역사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지난해 대한민국 연극제 연기대상을 받은 인기배우 길해연(45)씨가 김씨의 대하소설 《대발해》를 낭독할 때는 눈을 감은 채 역사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날아갔다. 이날 낭독회는 국민권익위원회(위원장 양건)가 직원들을 위해 마련한 '상상의 창문 만들기'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준비됐다.
《대발해》는 작가 김씨가 국회의원이던 1998년부터 구상해 2007년 출간한 총 10권 분량의 대하소설이다. 고구려 유민 대조영이 세운 발해의 200여년 역사를 그렸다. 김씨는 "웅혼했던 우리의 옛 역사를 되살리고 싶어 쓴 작품"이라고 집필 의도를 밝혔다.
▲ 20일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열 린 낭독회에 참석한 소설가 김홍신씨(왼쪽)와 배우 길 해연씨가 발해의 역사를 주제로 청중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이준헌 객원기자 heon@chosun.com
길해연씨는 고구려 평양성이 나당 연합군에 의해 함락당하는 장면을 긴박한 목소리로 읽어 나갔다. "고구려의 평양성으로 짓쳐드는 나당 연합군의 기세는 가히 경천동지의 광풍에 비견되었다. 지난 2월에 고구려의 요충지 부여성을 깨뜨린 요동도행군대총관 이적은 여세를 몰아 마자수를 가볍게 건넜다."
소설가 김씨는 대조영의 결혼 장면을 읽었다. 소설을 쓰는 동안 골방에서 두문불출하는 바람에 햇빛 알레르기에 걸렸던 경험도 털어놓았다. "소설 쓸 때는 하룻밤에 몇만명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닌데 막상 꿈을 꿀 때면 나는 꼭 병졸이 된다"는 말에 청중은 크게 웃었다.
강경의 기획조정실 주무관은 "일만 하는 곳이었던 직장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놀랍고도 기분 좋은 경험을 했다"고 낭독회를 반겼다.
카리스마 넘치는 성장소설 함부로 상상하지 마라! 그가 한 시대를 다스렸다고 해도 처음부터 모든 면에서 만들어진 완벽남이라고 상상한다면 오산이다. 소년 시절 마오쩌둥은 잘하든 못하든 신념을 갖고 공부하는 것도, 친구 사귀는 것도, 논쟁에서도 절대 기죽지 않는다. 단순하지만 추진력 있었던 소년 마오쩌둥의 입체적인 성장기를 생동감 있게 그려낸다. 그만큼 그의 인생만큼이나 확실한 재미와 감동이 있다.
글 : 황희 옮긴이 : 황선영 홍민경 이성희 판형 : 148x210(A5) ISBN-13 : 978-89-92673-29-7 페이지 : 735 가격 : 19,000원
> 책소개
4년 전, 후난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방송되어 시청률 고공행진을 기록하며 청소년들의 전에 없던 열렬한 반응을 얻었던 「그의 젊은 시절」이라는 연속극을 소설화한 책이다. 마오쩌둥이 제1사범학교를 다니던 시절을 배경으로 '양창지 선생과 마오쩌둥, 차이허썬'이라는 역사상 가장 유명하면서 가장 성공적인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그리고 있다.
『열아홉, 마오쩌둥』의 가장 큰 장점은 주인공부터 조연에 이르기까지, 실재했던 개성 만점의 캐릭터들이 현실에서 튀어나온 듯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냈다는 것이다. 여러 유형의 인물들을 통해 교사는 어떤 교육을 하고, 어떤 인재를 양성할 것인지, 또 학생은 어떻게 공부를 하고, 어떻게 인재로 자라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을 리드미컬하고 생동감 있게 잘 표현하고 있다.
또한 이 책은 마오쩌둥이 정치적 성향기가 묻어나기 전의 성장과정을 사실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며, 여러 사건을 통해 그가 살았던 시대상과 그의 삶에 대한 정열적인 면을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 출판사 서평
소년 마오쩌둥의 삶과 이상
카리스마 넘치는 성장소설 함부로 상상하지 마라! 그가 한 시대를 다스렸다고 해도 처음부터 모든 면에서 만들어진 완벽남이라고 상상한다면 오산이다. 소년 시절 마오쩌둥은 잘하든 못하든 신념을 갖고 공부하는 것도, 친구 사귀는 것도, 논쟁에서도 절대 기죽지 않는다. 단순하지만 추진력 있었던 소년 마오쩌둥의 입체적인 성장기를 생동감 있게 그려낸다. 그만큼 그의 인생만큼이나 확실한 재미와 감동이 있다.
사실을 이야기하고, 실제 인물이기에 재미가 남다르다! 『열아홉, 마오쩌둥』의 가장 큰 장점은 주인공부터 조연에 이르기까지, 실재했던 개성 만점의 캐릭터들이 현실에서 튀어나온 듯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냈다는 것이다. 이런 등장인물들은 선악과 희비 등의 극적인 요소를 한층 더 높여준다. 여러 유형의 인물들이 자아내는 인간군상의 허와 실, 세상과 온몸으로 부딪쳐 각자가 아닌 그들 모두를 위한 길을 찾아내는 마오쩌둥과 그의 친구들은 희망과 행복에 이르는 길을 한바탕 웃음과 질펀한 감동으로 이끈다.
중국에서 ‘마오쩌둥 신드롬’을 일으켰던 연속극 「그의 젊은 시절」 전격 소설화! 이 책은 4년 전, 후난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방송된 「그의 젊은 시절」이라는 연속극을 소설화한 것이다. 「그의 젊은 시절」은 방송 당시 시청률 고공행진을 기록하며, 특히 청소년들에게서 이전에 없던 열렬한 반응을 이끌어내며, ‘그의 젊은 시절 신드롬’을 일으켰다. ‘마오쩌둥이 제1사범학교를 다니던 시절’을 배경으로 ‘양창지 선생과 마오쩌둥, 차이허썬’이라는 역사상 가장 유명하면서 가장 성공적인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바탕으로 ‘교사는 어떤 교육을 하고, 어떤 인재를 양성할 것인가? 학생은 어떻게 공부를 하고, 어떻게 인재로 자라날 것인가?’라는 주제를 리드미컬하고 생동감 있게 잘 표현하였다.
중국의 멘토 마오쩌둥의 카리스마 넘치는 소년 시절 카리스마 넘치는 유머와 진지함이 함께 묻어나는 성장소설
> 목차
01 마오쩌둥 베이징대 진학의 꿈을 품다 02 제1사범학교 장학생 03 ‘초등교육에 대해 논하라 04 경세치용 05 좋은 나무를 심으려면 오랜 시일이 필요하다 06 동지를 찾아 헤매는 한 마리 새처럼 07 학문을 배우고 재능을 쌓다 08 검소함은 수신의 근본 09 비 오는 날 밤의 추억 10 다재다능한 사람은 많아도 뛰어난 인재는 찾기 어렵다 11 새해 12 28획 청년학도 회원 모집 공고 13 가련한 부모의 마음 14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15 5월 7일 중화민국 치욕의 날 16 아홉 번 죽어도 굽히지 않을 맹세로 맞서다 17 신임 교장 18 이융치의 죽음 19 교장 퇴진 운동 20 군자의 용기로 세상에 맞서다 21 반동 서적 거사 22 정신은 문명화하고, 신체는 야성화하라 23 중류에서 물살을 가르며 24 책벌레의 군사훈련 25 학생 인물 선발 대회 26 땀 흘려 세상을 경험하고 27 노동자 야학 28 깨어나야 할 때 29 사나이여! 만인의 영웅이 되라!
∥ 젊은 영웅들의 그 후 ∥ 역자후기
> 본문보기
1913년 3월 새벽녘, 창사에 흩뿌리던 가랑비가 막 그쳤고 사방에는 파릇파릇한 봄 내음과 짙은 꽃향기가 가득했다. 후난 공립 제1사범학교 교정에 내리쬐는 환한 햇살은 새로 돋아난 담황색 오동잎의 빗방울을 영롱하게 비춰주었다. 울창한 오동나무 숲을 바삐 걸어가는 팡웨이샤의 발걸음은 경쾌했다. 제1사범학교의 학과장 팡웨이샤는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등이 약간 굽었다. 그는 원래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온화한 사람이었지만, 1911년에 피바람을 겪고 나서는 다른젊은이들처럼 중화민국의 탄생에 몹시 격양되어 있었다. 오늘은 창사시 상업 연합회의 타오 회장이 학교에 기부금을 전달하러 오는 날이었다.
> 저자 및 옮긴이 소개
편자 : 황희
1969년 호남 출생. 기자, 편집자, 아나운서, 기업의 이사 등 여러 직업을 거쳤고, 근년에 시나리오 작가로 직업을 바꿨다. 2007년 황희가 썼던 23회 드라마 「마오쩌동(恰同學少年)」은 그해 중국 드라마 중에서 최고의 시청률을 받았다. 그는 이 드라마를 통해서 ‘중국드라마비천상’의 최고시나리오상을 받았다. 2007년 말에 방송된 드라마 「슈에상시(血色湘西)」는 많은 주목과 함께 대중매체의 ‘년도최고의 전쟁 드라마’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인터넷에서 관객들에 의하여 ‘2007년 중국에서 인기가 제일 많은 시나리오 라이터’라는 평가를 받았다.
역자 : 황선영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한중과 재학 중이다. 드라마, 영화 등에서 활발하게 통번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기획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역서로는 『거침없이 빠져드는 역사이야기 법학편』 『사람을 이해하는 기술(공역)』등 다수가 있다.
역자 : 홍민경
숙명여자대학교 중문과와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중번역학과를 석사 이수했다. 타이완 정치대학교에서 수학했고, 현재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기획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역서로는 『The Protein Girl(중국 소설)』『중국은 지금 몇 시인가?(공역)』 등과, 하오TV 「대한천자」 「강산위중」 등 다수의 드라마와 영상물 번역하였다.
역자 : 이성희
이화여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남경 사범대 한어과를 졸업하였다. 남경 금릉 언어교육원의 한국어 강사로 재직하였다. 현재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기획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역서로는 『사자개』『허명규의 인내경』 『와신상담 4』 등 다수가 있다.
올해의 한국의 드라마의 흐름을 보면 작년에 이어 사극이 강세를 보일 조짐이다. 지금 한참 방영 중인 ‘왕과 나’, ‘이산’, 그리고 ‘대왕세종’을 통해서만 보더라도 말이다. 요새는 드라마와 책이 通하나보다. 작년에도 한국 출판계는 역사물이 강세를 보였다. 올해도 비슷한 현상이 보여지지 않을까 싶다.
이 즈음하여 한국 역사의 흐름을 책을 통해서 한 눈에 보고자 한다. 책의 종류가 워낙 많기 때문에 분야는 ‘소설’로 국한했다.
<고조선>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 (1권) (이 책만 인문서이다. 고조선과 관련한 소설을 찾아보니 거의 미비했고, 단군에 대한 책은 인문서 내지는 어린이 책의 정도로 국한되었기 때문이다.)
지은이 : 이덕일, 김병기 출판사 : 역사의 아침 출간일 : 2006년 11월 이 책은 고조선을 둘러싼 갖가지 추측과 논쟁들을 되짚어 왜곡되고 뒤틀린 오류들을 하나하나 바로잡음으로써 우리 고대사에 대한 관심과 문제 제기를 새롭게 유도하고 있다. 이 책 뒤에는 고조선의 강역도가 있다. 지금도 그렇게 넣어서 판매를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강역도 덕분에 책을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신라> 선덕여왕 (1권)
지은이 : 정진영 출판사 : 징검다리 출간일 : 2007년 7월 신라가 문화를 꽃피우기 시작하고 백제가 세계 최고의 우수 문화 선진국이었던 서기 7세기를 배경으로, 신비롭고 아름다운 선덕여왕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표지의 띠지의 문구가 인상적이다. “역사가 시대를 부른다.” 그렇다. 역사를 모르면 우리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의미를 깨닫지 못한 채 그냥 흘러보낼 수도 있다.
<고구려> 주몽 (1~5권)
지은이 : 홍석주 출판사 : 황금나침반 출간일 : 2007년 1월 고구려의 시조 주몽을 중심으로 한 영웅들의 통쾌무비한 무용담과 지극한 애민정신, 영웅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고뇌와 갈등, 해모수를 비롯한 고조선 유민들이 목숨을 초개같이 여기며 지켜내는 신념과 정의, 참다운 우정, 유화를 둘러싼 해모수와 금와의 아름답고도 애절한 사랑, 주몽과 대소의 피할 수 없는 반목 등 인간사의 갖가지 원형을 모두 담고 있다. 역사적인 고증에 대한 논란 때문에 여러가지 의견이 분분했지만. 난 개인적으로 인기가 많기 때문에 따르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백제> 잃어버린 왕국 (1~5권)
지은이 : 최인호 출판사 : 열림원 출간일 : 2003년 10월 '잃어버린 왕국'은 백제를 지칭한다. 작품 집필을 위해 수백 권의 일본 서적은 물론 일본 각 지방을 샅샅히 답사한 노고가 그대로 작품 속에 배어있기도 하다. 광개토대왕비, 칠지도, 일본 서기 등 고대의 신비를 하나씩 풀어가며 백제, 왜, 일본 간의 관계를 파헤쳐가는 작가의 솜씨가 마치 드라마를 보듯 생생히 재연돼 있다. 대체역사소설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학계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이 많은 지라 흥미있는 역사책이라고 볼 수 있다.
<발해> 김홍신의 대발해 (1~10권)
지은이 : 김홍신 출판사 : 아리샘 출간일 : 2007년 7월 소설은 668년 고구려의 멸망에서부터 698년 고구려 유장 대조영이 세운 발해가 926년 멸망하기까지 발해국의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고구려의 뒤를 이은 발해는 고구려의 세배 넓이로 확장하는 등 당나라에 맞서 싸워 영토를 동북아의 최 강국으로 자리를 굳히지만 끝내는 자중지란과 거란의 침공으로 멸망한다. 이러한 발해의 흥망성쇠를 작가는 치밀한 고증과 취재,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해 10권의 소설 속에 담아냈다. 그 속에는 주변국과 싸워나가는 발해의 정치 군사 외교의 전략 전술이 흥미롭게 그려져 있으며, 수많은 영웅들의 원대한 꿈과 야망, 들풀처럼 억센 민초들의 애환이 녹아들어 있다.
<고려> 무인시대와 삼별초 (1~3권)
지은이 : 유현종 출판사 : 대산출판사 출간일 : 2003년 3월 고려 무사의 참모습을 그리고 그들의 양귀비꽃보다 더 붉은 무사의 정신을 그려보고자 한 작품이다. 살아 숨쉬는 민족혼과 한국인의 긍지가 깊게 베여 있는 무인시대와 삼별초. '우리도 사람 대접을 받고 살고 싶다'며 일어난, 당시의 '우리'인 고려 무인들의 목소리를 처절하게 그려내고 있다.
<조선> * 이성계 조선 태조 이성계의 대업 (1~3권)
지은이 : 김성한 출판사 : 해와비 출간일 : 2007년 8월 작가는 모든 사건의 한가운데에 이성계가 있었지만, 그를 스스로 대업을 이루어가는 인물로만 그리지 않는다. 순간순간 고민하는 이성계와 역사 속에서 명멸한 인물들에 초점을 맞추어 인간의 야망과 운명 그리고 종말을 생생하고 간결한 필치로 다루고 있다.
* 세종 대왕세종 (상,하)
지은이 : 김종년 출판사 : 아리샘 출간일 : 2008년 1월 <조선왕조실록>에 근거해 철저하게 역사적 사실에 입각해 서술한 대하소설로, 조선왕조 600년 중 태평성세를 구가한 세종과 그의 업적, 그를 둘러싼 갈등 및 시대상을 생생하게 구현하고 있다.
* 정조 이산 정조대왕 (1~3권)
지은이 : 류은경 출판사 : 디오네 출간일 : 2007년 9월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대왕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 『이산 정조대왕』의 원작소설로, 500년 조선 왕조사에서 가장 파란만장하고 굴곡진 삶을 살았던 제22대 임금, 정조대왕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드라마 대왕세종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군요. ^^ 우리 소설도 독자분들의 인기를 확실히 얻으면 좋겠습니다~.
드라마에서는 아직 충녕의 어린시절이 나오더군요.
드라마와 우리 소설과 일일히 비교해 가면서 글을 올리고 싶으나, 매주 빠뜨리지 않고 드라마를 잘 챙겨가면서 보게 될지.. (무려 80회라던데.) 혹시 몰라 저희 나름대로 시즌을 만들어 보고자 합니다. 하하하!
그 첫번째 시즌의 시작은 세종의 인물탐구로 시작합니다.
세종.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인간적 역할에 철저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효성스러운 자식이자 다정다감한 남편이자 자애로운 아버지, 그리고 우애가 깊은 형제였다. 태종의 3남인 그가 다른 형들을 물리치고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기본적으로 부모의 신뢰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게다가 그는 아버지 태종에 의해 사약을 받은 심온의 딸인 왕비 소헌왕후 심씨에게는 사려 깊은 남편의 역할을 다함으로써 두 사람 사이에 8남 2녀라는 많은 자식을 두기도 했다.
상권 표지
상권 49쪽
(from 소설 '대왕세종') 아버지 태종이 세종의 부인인 심씨를 어떻게 부르는 게 좋을지를 물어보니, 세종은 '검(儉)'자를 붙여 '검비(儉妃)'라고 하겠다고 한다. 그러자 부왕인 태종은 발음이 고르지 않으니, 공손의 의미를 가진 '공비(恭妃)'가 어떻겠냐고 묻는다.
세종대왕이 왕위를 동생에게 물려준 형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을 지극한 정성으로 보살핀 것은 숱한 드라마와 소설 속에 단골 미담으로 등장하는 것이어서 새삼스레 말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후에 하겠음. ^^) 일단 자애로운 아버지로서의 면모는 그다지 알려진 것이 없으므로 그 일면을 소개한다.
하권 표지
하권 292쪽
우리 소설 '대왕세종'은 조선왕조실록을 철저하게 바탕으로 쓴 역사 소설이다. 세종대왕이 각별하게 사랑했던 맏딸 정소공주를 12세라는 어린 나이에 잃고 그 비통한 심정을 담은 제문을 소개하겠다.
장수(長壽)와 단명(短命)에 기수(氣數)가 있으니, 예로부터 피하기 어렵지만, 부녀간(父女間)의 정은 어제나 변할 리가 없는 것이다. 대개 사랑하고 귀여워하는 마음은 천성에서 나오는데 어찌 존망(存亡)을 가지고서 다름이 있다 하겠는가. 아아, 네가 죽은 것이 갑진년(甲辰年)이었는데, 세월이 여러 번 바뀌매 느끼어 생각함이 더욱 더하도다. 이제 담제일(禫祭日)이 닥쳐오매 내 마음의 슬픔은 배나 절실하며, 나이 젊고 예쁜 모습을 생각하매 영원히 유명(幽明)이 가로막혔도다. 이에 중관(中官)을 명하여 사실을 진술하고 전(奠)을 드리게 하노라. 아아, 제도는 비록 한정이 있지마는 정에는 한정이 없도다. 영혼이여, 어둡지 않거든 와서 흠향하기를 바라노라. (세종 8년 4월 12일)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심정을 오늘날에도 이렇듯 절절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런데 조선시대, 더군다나 일국의 군주로서 자기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딸아이에 대한 그리움을 전혀 가식 없이 사무치게 토로하고 있다. 세종. 그는 위대한 임금이기에 앞서 따뜻한 가슴을 가진 인간이었다.
2007년 한 해를 뜨겁게(!) 달군 드라마를 꼽으라면 KBS에서 방영한 '대조영'이라 할 수 있겠다.
잊혀졌던 우리 역사를 환기시키며 '발해'가 우리 땅이었다는, 중국의 역사가 아닌 우리네의 역사라는 것을 많은 시청자들에게 알려줬다는 점에서 큰 영향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역사적인 고증에 대한 논란은 끊임없이 제기됐고 역사 왜곡이네, 뭐네 하는 논란이 많이 일어났다.
어쨌거나, 부족한 역사 자료때문에 드라마 대본을 쓰는 데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텐데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발해는 우리 역사'라는 의식을 심어주는 데에는 공을 세웠다고 말하고 싶다. ^^
중국에서 발해 자치구를 아예 중국의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유적지도 싹 없앤다는 얘기가 있는데... 정말.. 우리도 뭘 알아야 중국의 움직임에 반발이라도 할 텐데 답답할 노릇이다.
최근 출간된 발해와 관련한 책들을 모아봤다. (아동도서 제외)
국내외 발해사 발해사 전체를 발해의 668년 고구려의 멸망 한국사의 판도를 전문가들이 건국, 변천과 융성, 에서부터 698년 만주 일대로 확장한 발해의 역사와 문화를 멸망과 부흥운동, 고구려 유장 대조영이 조선 후기 실학자 보여 주는 대표적인 대외관계와 제도, 세운 발해가 926년 유득공의 저서 주제들을 골라 정리한 사회·경제, 문화, 멸망하기까지 발해국의 <발해고>를 우리말로 발해 교양서. 발해사 관련 자료와 유구한 역사와 옮긴 책. 인식으로 나누어 기술. 찬란한 문화를 서술한 역사소설.
워낙 자료가 부족하다보니 역사에 대해서 연구하는 인문서 외에는 다른 종류의 책을 개발하기가 어려운 가 보다. 그도 그럴 것이 김홍신 작가가 '대발해'를 집필하면서 참고한 자료만 500여 권이 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자료가 너무 없어서 일본, 중국 자료들을 샅샅이 뒤져서 보면서 작품 준비에만 2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으니 말이다.
------------------------------------------------------------------------------------------ KBS에서 '대조영' 방영이 끝난 후에, 새로운 드라마를 시작한다. 그 이름은,
KBS드라마
80부 대작으로 방영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역사적으로 철저한 고증을 했는지 여러가지 궁금하다.
이 드라마에 맞춰서 최근 '세종'과 관련된 책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우리도~ 준비하고 있다~! 기대, 기대, 기대. ^^
우리 책이 나오기 이전에 타사에서 나온 세종과 관련된 책을 한 번 살펴보고자 한다.
조선사 속 세종, 연산군, 세종의 어린 시절부터 ‘제왕’과 ‘책’이라는 우리가 알고 있는 광해군, 정조라는 세종이 승하한 후에 특별한 두 존재의 만남을 조선왕조 역사가 네 왕을 통해 변화한 조선까지, 소재로 우리 역사의 그 역사를 기록하는 죽을 때까지 투쟁해야하는세종을 둘러싼 모든 역동적인 현장들을 신하의 눈에 의한 권력의 고독한 본질을 것을 다루고 있는 책 새롭게 찾아가는 역사라는 사실을 집약적으로 교양서 강조하고 있는 책 보여주고 있는 책
한글에 숨겨진 세종대왕의 마음경영법 세종이 직접 똥지게를 황희, 김종서, 정인지, 비밀들을 재미있는 에 대해서 서술한 책 지고 농사를 지음으로써 신숙주 등 쟁쟁한 이야기들을 통해 지방 수령들을 감동 조선의 정치가 9인의 차곡차곡 풀어나가고 시켰던 사실을 통하여 시선으로, 정치가 있는 책. 농촌에 대해서 다시금 세종의 모습을 그린 책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책
이렇게만 봐도 세종과 관련한 내용은 리더십~정치~농업~기호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거리가 있음을 볼 수 있다.
역사에 대해서 다각도로 바라보는 눈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나, 한쪽의 역사에만 치우칠 것이 아니라, 잊혀져 가는 역사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난 요새 거의 선생님 비서. 덜렁대서 종종 야단맞지만- 그래도 일 있을 때마다 에스코트(?) 해 드려야지.
과연 나의 보호를 제대로 받고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ㅎㅎ
신문 인터뷰 할 때랑은 다르게 조명 기구까지 화려하게(?) 등장하여 진행된 인터뷰였다.
인터뷰 시간에 5분 지각했는데,
줄무늬 블라우스를 입으신 기자님.
나에게 눈길 한 번 안 주셨다. 고개 한 번만 돌리셔서 인사 한 마디만 해 주셔도 좋았을텐데. ㅜ.ㅜ
신문 인터뷰 할 때는 보지 못하는 저 조명기구.
나도 전에 잡지사 인터뷰 할 때 나온 사진은 무지 맘에 들었었다.
역시,, 잡지는 비주얼이 확실히 중요해.
한 쪽에서는 인터뷰가 한참 진행 중이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선생님이 쓰신 원고 노트('김홍신의 대발해'가 원고지 12,000매 분량이다.)를 열심히 찍는 사진기자.
선생님 만년필, 안경 등을 노트 위에 놓고 작품 사진 찍고 계시는 중. ^^
그리고 열심히 노트하고 있는 우리 홍보팀의 장 과장의 노트와 살짝 나온 손가락 끝.
난- 불나는 내 전화기를 들고 방을 왔다갔다 하다가..
결국 한 30분 넘게 밖에서 전화만 했다. -.-;
작품 얘기하실 땐 눈이 반짝반짝해지시는 울 김 쌤!
저 책들 사이에 있는
'김홍신의 대발해' 책.
빛난다.
내 눈에는 이 책만 반짝반짝 빛나는데,, 어떠신가요, 들? ㅎㅎ
최근 중국이 일본에 발해의 돌비석 ‘홍려정비’의 반환을 요구한 데 이어 발해의 수도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 유적을 복원, 내년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고구려에 이어 발해까지 자신의 역사에 편입하려는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이 점차 가속화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 같은 중국의 역사도발의 저의를 파악하기 위해 10년 가까이 발해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김홍신 전 국회의원을 만났다. 김 전의원은 베스트셀러 소설 ‘인간시대’의 작가에서 정치가로 변신해 15, 16대 의원을 역임하며 ‘가장 열심히 일하는 정치인’으로 꼽혔으나, 지난 총선에서 고배를 마신 뒤 다시 ‘본업’인 소설가로 돌아왔다.
2일 서울 서초동 자택 2층 서재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문화일보 최고”라며 “‘발해인의 발’기사 멋있었다”라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문화일보 1면에 보도된 발해관련 기사에 대한 칭찬에 이어 그는 중국의 ‘홍려정비’ 반환기사, 상경용천부 관련기사 신문스크랩을 꺼내들고 다짜고짜 발해의 이야기로 들어갔다. 온통 관심이 발해에 집중돼 있는 것 같았다. 정치가의 선동적 열기도 느껴지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순수함이 있었다. 이상을 꿈꾸는 소설가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서기 732년 발해 2대황제 무황은 베이징(北京) 근처에까지 진군해 갔습니다. 당 현종이 그때 남북 400리길을 길목마다 돌로 울타리를 쌓아 막았다고 했습니다. 당이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입니까. 당시 세계 최강대국입니다. 그런 나라의 주요도시를 위협할 정도였으니 얼마나 대단한 위세였겠는지 상상해 보십시오.”
그는 이 이야기가 한국역사서가 아니라 중국 역사서 ‘책부원구(冊府元龜)’에 나온다고 강조했다.
“당시 발해 장문휴 장군이 지금의 산둥반도 옌타이에 쳐들어가 ‘석전(石田)’을 만들어 버렸다고 나와 있습니다. 완전히 초토화시켜 버린 거지요. 그때 당 현종이 인질격으로 당나라에 있던 신라왕족 김사란을 시켜 신라 성덕왕 김흥광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발해를 치면 특별한 상을 내리겠다며 김유신의 아들 김윤중이 용맹하다고 들었는데 그를 보내라고까지 합니다. 정확하지 않지만 그때 김윤중이 5만명 정도의 군사를 데리고 가는데 군사의 절반 이상을 잃는 대패를 당하지요. 발해는 그렇게 강한 나라였습니다.”
이렇게 끌려가다는 발해역사이야기 밖에 아무것도 못 들을 것 같다. 발해를 주제로 이야기하려 왔지만 소설의 내용만 들으러 온 것은 아니다. 중국의 정치적 의도가 뭘까로 화제를 돌렸다. 결국 북한은 무너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남한에 의한 한반도의 통일을 중국이 결코 달가워할 리가 없다.
전통적으로 ‘오랑캐로 오랑캐를 제어하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입술이 없어지면 이빨이 시린’ 순망치한(脣亡齒寒)을 기본외교 노선으로 하고 있는 중국이 잠재적 적국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남한이 한반도를 통일, 중국과 국경을 맞대는 것을 그냥 두고 보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북한의 하드크래시(hard crash·경착륙)와 같은 유사시 중국이 개입할 명분 마련을 위해 고구려는 물론 발해사까지 중국의 역사에 편입시키는 동북공정을 펼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물었다.
“그렇습니다. 바로 잘 봤습니다. 1998년 의원자격으로 중국을 갔을 때 중국이 동북공정을 강력히 추진하는 배경이 느껴졌습니다. 이것을 국민에게 알려주지 않으면 정말 큰일나겠다 싶었습니다. 북한땅이 중국땅이 되겠다는 절박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자료를 모으며 공부했습니다.”
그는 “현재 중국이 북한에 철로를 놓고 있고 장마당 물건의 90% 중국 물건”이라며 “이 같은 상황에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걱정스럽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중국은 변경 연구에 있어서 최고수준”이라며 “55개 소수민족 등 변경 민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보화, 세계화 시대에 중국의 통합을 위해서”라고 말했다.
“중국은 땅이 큽니다. 이제 인터넷 등이 전국에 깔리면 통제가 불능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티베트족, 조선족 등 정신적 가치가 우월한 민족은 독립한다고 중국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이들을 필두로 다수 민족이 독립해 나가 중국이 쪼개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미 그것을 구 소련의 붕괴에서 철저히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발해의 역사는 사실 잊어진 역사일지 모른다. 삼국시대 이후를 통일신라시대라고 부르는 것이 단적인 예다. 그래서 최근 통일신라시대가 아니라 발해와 신라, ‘남북국시대’라는 주장이 역사학계에서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이를 위해 “역사교과서 개편도 중요하지만 더 효과적인 것은 소설입니다. 정확한 사료를 입력시켜 주고 역사를 하나하나 뒤집어 쓰는 것, 우리로 보면 바로 쓰는 것이죠. 이것이 제가 발해소설을 쓰기 시작한 이유입니다.”
그는 소설을 쓰기 위해 이미 언급한 ‘책부원구’를 비롯해 ‘신당서(新唐書)’ ‘구당서(舊唐書)’ 등 중국 사료와 ‘단기고사(檀奇古史)’와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 국내외 사료 136책 400여권을 참조, 발해사를 복원해 냈다. 왕조 연표에서부터 주요 사건을 표로 만들어 서재에 빼곡히 붙였다. 그 사료의 뼈대를 뒤집어 상상의 살을 붙인 것이다.
“중국은 철저히 자기가 최고라는 중화사상에 젖어 있습니다. 그들이 침략하면 가장 먼저하는 것이 역사왜곡 아닙니까. 설인귀가 고구려와 백제를 침략해 나라의 서고부터 불살랐습니다. 그렇게 없애놓고 자신들의 역사에는 자기들 중심으로 거꾸로 기록해 놓습니다. 지금 남아있는 역사는 그런 자료들 뿐입니다. 사료를 뒤집어 해석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단적인 예로 연개소문을 들었다. 연개소문은 중국 역사에서 ‘연(淵)’씨가 아니라 ‘천(泉)’씨로 돼 있다는 것이다. ‘연’자가 당 태종 이세연의 이름에 쓰인 글자이고, 당태종을 죽음에 이르게 한 장본인이 연개소문이기 때문에 성을 ‘천’씨로 바꿔버렸다는 것이다.
“물론 ‘단기고사’같이 강단사학자들이 인정하지 않는 책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용을 보면 결코 그냥 만들 수 없는 책입니다. 형태는 위서이지만 내용만은 충분히 진실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역사를 철저히 왜곡시켜 놨는데 그들의 자료를 뒤집어 보고 가능한 모든 국내 자료를 해석해 제대로 역사를 살려놔야지요.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식민사관에 철저히 길들여진 결과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2004년 총선에서 패한 뒤 공직 제의가 있었으나 고사하고 바로 소설작업에 들어갔다. 그렇게 쓴 것이 8권을 넘어 9권째다. 권당 1000페이지 분량이고 모두 10권으로 계획하고 있다. 11권은 참고한 자료들을 모은 색인집이다. 그는 “올 가을쯤 완성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앞에 책들을 미리 내자는 출판사측의 요구도 있었으나 한꺼번에 내놓자고 미루고 있다. 8권은 이미 컴퓨터작업까지 끝났다. 엔터키만 누르면 지금이라도 책이 돼서 나올 수 있는 상황이다. 마지막 장면이 궁금했다.
“마지막 발해황제 대인선이 목에 밧줄을 걸고 한 손에는 밧줄을 또 한손에는 양을 끌고 소복을 한 채 나옵니다. 황후도 함께 소복을 하고 나오지요. 이 때 적장 역시 부인과 함께 말위에서 무릎 꿇은 발해황제의 항복을 받습니다. 그리고 발해황제에게 자신이 탄 말의 이름을, 황후에게 자신의 부인이 탄 말의 이름을 내려줍니다. 한 때 한 나라의 황제를 짐승취급한 겁니다.”
그는 이같이 비참한 결말에 대해 “교훈을 주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발해는 중국 본토를 위협한 사방 5000리의 나라였습니다. 당시의 중국의 10리는 4㎞가 아니라 5.59㎞였습니다. 고구려의 몇배가량 되는 강대한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가 지금은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내홍과 이에 따른 외침입니다. 내홍이 없으면 외침을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지만, 갈등과 분열의 내홍이 벌어지면 외침에 대항할 힘을 잃어버립니다. 그것이 제가 발해소설을 쓴 이유입니다.”
(매일경제 2007.08.06) =================================================================================== 김홍신 전 의원(59)은 요즘 잠도 마다하고 맹렬히 쓰고 있는 중이다.
발해를 소재로 한 10권짜리 역사소설이다.
벌써 2년을 넘긴 일이니, 2004년 총선 낙마 직후 시작한 것이 된다.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어떻게 8년간의 정치인 생활을 그렇게 훌훌, 송두리째 잊고 곧바로 다른 일을 시작하느냐는 것이다.
실존적인 상실감까진 아니더라도, 세속적 의미의 상실감을 피하긴 어려웠을텐데…. "많이들 신기해 하세요. 그런데 그런 거 전혀 없었습니다. 그냥 시작했어요."
작가 김홍신은 4년 전 담배 끊었던 얘기를 들려준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법륜스님이 계시는 수련원에 들어갔을 때 일인데, 금연이 그렇게 어렵더란다. 그런데 스님이 문득 "물컵이 뜨거우면 내려 놓으라!" 하시더란다. 그때 담배를 끊었고, 지금까지 안 핀다. 김홍신은 "지금 총무원장 하시는 지관스님 밑에서 젊은 시절 공부를 한 적도 있다"며 "그런 공부들이 정치의 기억에 얽매이지 않게 해주는 것도 같다"고 했다.
지난 21일 찾아간 서울 서초동 김홍신의 자택 2층 집필실은 발해 관련 역사서로 빼곡하다. 책장은 물론이고 책상 위 방바닥까지 색색의 메모지 꽂힌 역사서 천지다. 그리고 책상 위에 대학 노트 한 권. 그 위에서 발해의 웅혼한 역사가 쉴새 없이 꿈틀거리고 있는 중이다.
작가가 흥분한다. "거란 쪽 기록에 '평양성을 함락하면 남자를 다 죽이라'는 말이 나와요. '발해 남자 셋이 모이면 호랑이도 잡는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발해가 그런 나라였어요. 그런데 발해 자체 기록이란 게 3대 문왕의 공주들 무덤에서 발굴된 비문 1400여 자뿐이에요. 발해에 관한 기록 중 99%가 중국 것입니다. 중국이 '발해는 말갈의 나라'라고 하니까, 그런 것처럼 돼버린 거죠."
발해를 소재로 한 역사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로서 그는 동북공정으로 상징되는 중국의 역사관에 대해 민감하다. 그는 "중국 학자들은 소련이 해체된 것처럼 중국도 언젠가는 해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그걸 막기 위해 지금 그렇게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발해 이야기가 담긴 그의 노트가 이미 30권에 육박한다. 10권 예정인데, 이제 9권 정도를 마무리했다. 그 동안 몸도 많이 망쳤다.
김홍신은 "87년쯤 근세사를 소재로 한 세권짜리 '내륙풍'을 쓴 적이 있지만 그때와는 비교가 안되는 작업"이라며
"지금도 정형외과, 한의원, 물리치료원에서 손을 치료해가며 쓰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손 아픈 게 문제가 아니다. 그는 구상하고 있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귀띔해 주며 "정말 가슴이 너무 아파요!"라고 말했다. 갑작스런 한숨을 터뜨렸다.
소설 끝에서 마지막 발해 황제 대인선은 목에 밧줄을 건 채 황후와 함께 무릎을 꿇는다. 그 앞에 선 적장은 발해 황제에게 자신이 탄 말의 이름을, 황후에겐 자신의 부인 말 이름을 내리게 된다. 그는 '김홍신의 대발해'가 출간되면 내년 초 인도에 잠깐 머물 생각이다. 붓다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쓰겠단 생각을 오래전부터 하고 있다. 정치판을 소재로 한 소설 '신 인간시장'이 먼저 나올 수도 있다.
김홍신(金洪信·60) 전 의원을 다시 만난 것은 그가 2003년 9월 정기국회를 마치고 국회의원직을 그만둔 후 거의 3년 만이었다. 김홍신 의원실은 의원직을 그만두기 직전까지 대한적십자사의 혈액오염 사건을 터뜨리는 등 화제가 끊이지 않아 기자들의 출입이 잦았다.
지난 12월7일 오후 김 전 의원의 서초구 자택을 찾았다. 그는 몰라보게 수척했고 얼굴엔 세월의 흔적이 내려앉아 있었다. 2004년 3월 아내의 죽음, 그 한 달 후 17대 국회의원 선거(서울 종로) 낙선. 지난 몇 년간 그에겐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그런 그에게서 정작 세월을 훔쳐간 ‘도둑’은 1년6개월 넘게 공을 들인 발해 소설이다. 그는 2005년 여름부터 대학노트에 글을 쓰기 시작해 인터뷰 당일 새벽 3시쯤 13권, 200자 원고지 1만2000장 분량의 소설에 마침표를 찍었다. 제목은 ‘김홍신의 대발해’. 소설은 고구려가 망한 668년부터 시작해 발해가 망한 926년에 끝을 맺는다. 그는 발해 소설을 쓰기 위해 국회의원 시절부터 8년 이상을 매달렸다고 한다.
소설을 쓰면서 두문불출,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았다. 운동도 하지 않고 새벽까지 글쓰기를 하는 통에 오른팔에 마비증세가 왔다. 늘 웃는 낯이던 표정은 굳어 있었고, 볕을 못 쬐서 생긴 햇빛 알레르기 때문에 피부약을 바르고 있었다. 머리숱도 부쩍 줄어 있었다.
▼ 팔에 마비가 와 스테로이드 주사까지 맞았다면서 왜 수기(手記)를 고집하십니까.
“인호(소설가 최인호) 형과 약속한 게 있어요. 죽을 때까지 손으로 쓰자고. 서로 누가 먼저 배신하는지 지켜보고 있거든요, 하하.”
대제국 발해
▼ 발해와 관련된 유적, 유물, 기록이 드물어 취재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그랬습니다.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정혜공주 비문과 건국자 대조영의 동생 대야발이 쓴 ‘단기고사(檀奇古史)’가 고작입니다. 우리와 관점은 좀 다르지만 북한에서 나온 연구서적도 도움이 됐습니다.”
▼ 취재답사를 많이 다녔습니까.
“발해는 고구려보다 두 배 이상 넓은 영토를 가진 대제국이었습니다. 총연장 4300km에 사방 5000리(1리는 5.6km)에 달하는 대제국이었으니까요. 2005년과 2006년 여름 두 번을 다녀왔는데, 법륜스님과 고구려, 발해의 유적지부터 항일운동 유적지까지 다 훑었습니다. 발해의 첫 수도이자 시조산인 동모산은 일반인은 못 들어가는데 재수 좋게 올라갔다 왔어요. 정말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로 광활한 곳이었습니다.”
▼ 발해 소설은 언제부터 구상했습니까.
“1986년 처음 중국을 갔을 때 그곳 재야 사학자로부터 ‘중국이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뒤집으려 한다, 그래서 중국 역사에 편입시키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나중에 보니 이게 점점 사실이 되어가더라고요. 1998년 국회의원으로 중국을 방문했을 때 결심을 굳혔습니다. 이미 그때는 ‘동북공정’의 서막이 오르고 있었어요.”
발해 유적지에서 온갖 수소문을 해 기와 파편과 유물조각 등을 어렵사리 구해 들여오기도 했다.
말갈은 발해의 일부였을 뿐
▼ 현재 TV 드라마나 백과사전에 나오는 발해 역사에 틀린 부분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동모산에 이어 발해의 두 번째 수도인 상경용천부가 당(唐)의 수도 장안성을 그대로 축소했다고 하는데, 이는 중국 기록을 그대로 베낀 모화사관(慕華史觀)이 빚어낸 허구죠. 제가 직접 가서 성터를 둘러봤는데 성 축조 방식이 중국 성과는 딴판이에요. 무너진 성벽을 보니 상어 이빨처럼 내부가 뾰쪽하게 튀어나와 있더군요. 무너지면 무너질수록 적군이 올라오기 힘든 구조예요.”
▼ 많은 사람이 발해를 고구려 유민과 말갈의 통합국가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지배층은 고구려인들이었다는 거죠.
“발해의 시조 대조영(大祚榮)과 그의 아버지 대중상을 말갈인으로 기록한 ‘구당서(舊唐書)’와 ‘신당서(新唐書)’ 등 중국 기록을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신당서 발해 말갈전에 ‘대조영은 고구려 별종(別種)이다’는 문구가 있죠. 일부에서는 그냥 고구려 장수라고 얼버무리고, 한쪽에서는 말갈에서 귀화한 고구려인이라는 중국측 해석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대조영은 고구려 방계 왕족의 후손입니다. 고구려 왕의 성은 본래 높을 고(高)자를 썼어요. 세월이 흘러 후궁이 많이 생기고 거기서 나온 왕족이 늘어나니 왕족을 둘로 갈랐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겐 큰 대(大)자를 성씨로 내려줬습니다.”
▼ 대조영의 아버지 대중상은 ‘걸걸중상’이라고 알려져 있는데요.
“구당서는 대조영의 아버지 대중상을 걸걸중상(乞乞仲象)이라고 표기했습니다. 걸씨는 말갈의 성씨예요. 대조영의 부하였던 걸사비우는 말갈족 출신 장수거든요. 중국의 역사가들이 대중상의 이름을 바꿔놓은 겁니다. 그것도 ‘걸’자를 두 번 반복해 쓰면서까지.”
▼ 연개소문의 이름도 바꿨다면서요.
“중국의 역사 조작은 아주 유치합니다. 연개소문(淵蓋蘇文)을 사서에 천개소문(賤蓋蘇文)이라고 써놓았지요. 연개소문이 누굽니까. 수나라를 멸망시키고 당 태종을 죽게 한 인물이잖아요. 그래서 성을 천할 천(賤)자로 바꾼 겁니다. 고구려가 멸망한 후 대중상, 대조영과 함께 반란을 일으킨 거란족장 이진충(李盡忠)과 그의 처남 손만영(孫萬榮)은 이진멸(滅)과 손만참(斬)으로 이름을 바꿨어요. 후손까지 다 죽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결론적으로 발해는 고구려의 왕족이 세운 나라입니다. 발해가 고구려와 말갈의 통합체라는 설은 잘못된 것입니다. 말갈은 발해가 다스린 땅의 일부분이었을 따름이에요. 발해의 땅이 옛 고구려 땅을 모두 포함하는데, 고구려 멸망 30년 뒤에 말갈 사람들이 그곳에 들어와 살았다는 게 말이 됩니까. 300년 후라면 몰라도.”
대조영에 제사 지낸 천손(天孫)
▼ 좀전에 우리 역사가 모화사상에 젖어 있다고 하셨는데.
“이이제이(以夷制夷)라고 할 때 우리가 흔히 아는 오랑캐 이(夷)자를 보세요. 큰 대(大)자 안에 활 궁(弓)자가 들어간 형세입니다. 본래는 군자를 의미하는 글자였죠. 따라서 동이족(東夷族)은 ‘동쪽에 사는 군자의 나라’라는 뜻입니다. 번역에도 문제가 많았어요. 중국 사서에서 할 위(爲)자를 번역하면서 중국이 우리에게 보낸 국서는 ‘하라’라고 하고 우리가 중국에 보낸 국서는 ‘하옵소서’로 번역한 겁니다. 통탄할 일입니다. 소설에서 이걸 하나하나 바로잡았죠.”
▼ 소설의 하이라이트 부분은 어디인가요.
“발해의 창립 시기, 2대 황제 대문예가 만리장성 코앞인 마도산과 산둥반도 옌타이(등주), 베이징까지 쳐들어간 후 그 일대 400리를 쑥밭으로 만드는 대목, 나라를 강성하게 만드는 10대왕 선황 때, 마지막 황제인 대인선 무렵 등입니다.”
▼ 소설을 쓰면서 제사를 지냈다지요.
“2005년 여름 소설 쓰기를 시작하기 전, 고구려 국내성이 자리잡았던 중국 지안(集安)현 통천동(通天洞)에서 환인, 환웅, 단군, 대조영에게 제사를 지냈습니다. 산 정상에 있으면서도 앞뒤가 다 트인 이상한 굴인데 너비가 20m, 높이가 6m나 됩니다. 그곳에 서면 ‘하늘과 통한다’는 통천동의 의미를 알 수 있어요. 고구려와 발해의 왕은 이곳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 자신들이 하늘의 아들, 즉 천손임을 인정받았죠. 당시 하늘의 자손임을 주장하는 나라는 고구려뿐이었고, 발해가 이곳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것은 발해가 고구려의 역사를 이은 나라이며 중국과 대등한 나라였음을 보여줍니다.”
▼ 소설의 끝 부분을 좀 소개해주시죠.
김 전 의원이 원고를 읽기 시작했다.
“정월 정축일(926년 1월20일)…대인선의 왼손에 붓을 억지로 끼우고 장수 하나가 어수를 잡고는 어필을 남겼으니 이것이 곧 항복문이었다…. 야율아보기는 그 자리에서 황제 대인선에게 오르고, 황후 고담소에게는 아리지라는 이름을 하사했는데 그것은 야율아보기와 부인 순율이 타고 있던 말의 이름이 아니던가. 멸망한 나라의 황제와 황후는 짐승과 다름이 없었다…. 마침 눈발이 굵어지기 시작했고, 느닷없이 해동청 보라매 한 마리가 바람을 가르며 야율아보기를 향해 내리꽂혔다. 대원수 야율요굴이 휘두른 칼날에 매는 두 동강이 났다. 발해의 마지막 황제가 그토록 아끼던 사냥매는 그렇게 사라졌다. 마치 발해처럼.”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끝〉’자 밑에 보니 뭔가 한 줄이 더 씌어 있었다.
‘내 혼을 깨워 흔들며 2006년 12월7일 02시54분 드디어 끝내다.’
그는 “솔직히 글을 쓰면서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죽고 싶었다”고 했다. 그때마다 “이 길이 내 길이야” 하고 자기 최면을 걸면서 집필에 매달렸다고 한다.
▼ 소설의 시작과 끝이 다 민족사의 가슴 아픈 시기군요.
“교훈을 얻자고 그렇게 했어요. 작품을 쓰면서 우리를 포함해 각 나라의 멸망사를 훑어봤는데 비슷한 특징이 있었어요. 첫째는 좌우, 상하의 치열한 갈등과 분쟁입니다. 둘째는 상류층의 호화사치, 셋째는 지도층 인사들의 혼암(昏暗·어리석고 못나서 사리에 어둡다, 사회가 혼란스럽고 정치가 부패했다는 뜻), 넷째는 민심이반이 지나쳐 천심을 거스름, 다섯째는 외침(外侵)입니다. 우리는 IMF 관리체제 때 이미 외침을 당해 패망한 경험이 있지요. 요즘 전쟁은 총칼을 앞세우지 않는 경제전쟁입니다. 그러고도 정신을 못 차리니….”
선거 40일 전 출마 통보
▼ 요즘 지도층이면 김 전 의원이 정치할 때 친하게 지낸 분들 아닙니까.
“혼암의 원인을 어느 한두 사람에게서 찾을 수는 없겠죠. 다만 이런 얘기는 하고 싶습니다. 조선시대 상소문을 한번 읽어보라고. 읽어보면 끔찍하죠. 절대군주인 왕을 짐승 다루듯 해요. 이런 비판의 목소리를 현군은 받아들였지만 폐군(廢君)은 절대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대화 주제가 정치로 옮겨가자 김 전 의원은 “정계를 떠난 후 마음공부를 많이 했다”며 “비판하되 미워하지 않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했다.
▼ 2004년 4월 국회의원(서울 종로) 출마는 어떻게 결정됐습니까.
“2003년 10월 국회의원을 그만둔 후 발해 관련 자료를 찾느라 여념이 없었는데, 어느 날 정동영, 김한길 등 열린우리당 중진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처음엔 못 간다고 했죠. 정확히 총선 40일 전에 연락한 거예요. 애 엄마가 세상을 뜨는 바람에 일주일은 선거운동 못했지…어쩔 수가 없었어요. 비록 0.7% 차이로 당락이 갈렸지만 우리는 패배를 축제로 승화했습니다. 선거자금도 매일, 그것도 끝전 한자리까지 공개했고요. 후회는 없어요.”
“김홍신한테 돈 달랬다간…”
▼ 이젠 정치를 안 할 생각인가요.
“살다보니 본의 아니게 거짓말 하는 경우가 생깁디다. 국회의원 되기 전에 라디오 생방송에서 방송 중단에 대한 항의문을 읽어 파문이 일었는데, 어느 기자가 ‘스타가 돼 정치를 하려는 게 아니냐’고 묻길래 ‘쓸데없는 소리 마라. 내가 정치하게 생겼냐. 나는 언론의 자유를 위해 그랬다’고 했어요. 그런데 결국은 국회의원이 됐잖아요. 그 뒤로는 말을 함부로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면 되는 것이죠. 사실 정치를 하면서 현실적으로, 경제적으로 손해 많이 봤습니다.”
▼ ‘인간시장’은 최초의 밀리언셀러이자 스테디셀러 아닙니까. 인세 수입이 짭짤할 텐데요.
“국회의원이 되니까 책이 안 팔려요. 더욱이 국정감사 때마다 열댓명씩 와서 일했으니 어떻게 됐겠어요. 자료 수집하는 것도 그렇고. 전부 내 돈 썼어요. 보좌관도 2명 이상 썼고.”
▼ 사비(私費)를 털어 의정활동을 했다는 얘깁니까.
“알다시피 전국구 의원을 하면 당에 돈을 내잖아요. 그런데 저는 전국구 의원 두 번 하면서 헌금을 안 낸 유일한 의원입니다. 한번은 선배의원에게 ‘왜 나한테선 돈 안 받았어요?’라고 물었더니 ‘김홍신이한테 돈 달랬다 당 깨질 일 있냐? 네가 그냥 있겠어? 바로 갈겨버릴 거 아냐. 그러면 당도 이회창도 끝나는데…’하더군요. 따지고보면 공짜로 전국구 의원 됐는데 국민을 위해 세비 쓰고, 모자라면 사비 쓰는 게 당연하지 않나 합니다.”
▼ 당시 김홍신 의원실 출신 보좌관들이 요즘 잘 나간다고 하더군요.
“대부분이 낙선한 의원실에서 왔죠. 청와대 비서관으로 있는 친구는 당시 노무현 의원이 국회의원 떨어지면서 후원회장인 이기명씨가 다리를 놓았고, 국무총리실에 있는 친구는 김원웅 의원이 떨어지면서 보냈어요. 유인태 의원이 떨어지면서 여성 보좌관을 보냈고. 모두 보건복지쪽 전문가들이었지요.”
▼ 보좌관을 보낼 정도면 노무현 대통령과 그전부터 친했나 봅니다.
“제가 국회의원 되기 전에 글 쓰고 있을 때 후원회장인 이기명씨가 보자고 해서 갔더니 노 의원의 등산모임에 와서 강연을 좀 해달라고 했어요. 그렇게 했죠. 또 경실련 일을 하면서 정치개혁을 담당했는데, 그때 꼬마 민주당이 통합민주당이 됐습니다. 이철 의원이 불러서 모임의 사회도 보게 했고…그래서 압니다.”
▼ 2003년 9월 한나라당을 나올 때 왜 혼자 늦게 나왔습니까.
“사실 한나라당에서 나오자는 모임을 구성한 것은 저였지요. 그런데 저는 정기국회를 끝내고 나가야 할 몇 가지 이유가 있었어요. 그래서 이부영 선배를 비롯한 모임 의원들에게 ‘나를 밟고 먼저 가라’고 했죠. 당시 애 엄마가 병원에 있었는데 그때 그만두면 뒷바라지하기 힘든 상황이었고, 정기국회는 마치고 의원생활을 접는 게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약속대로 정기국회 끝나는 날 그만뒀습니다. 그 바람에 경실련과 ‘동아일보’가 주관한 의정활동 평가에서 1위를 한 것 아닙니까.”
▼ 보건복지부 장관 물망에 계속 올랐죠.
“주변에서 듣긴 들었는데, 그것도 기대한다고 되는 게 아니죠. 지금은 장관, 국회의원 하는 것보다 소설 쓰는 게 열 배는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해요.”
▼ 2006년 서울시장선거를 앞두고 김 전 의원도 거명된 것으로 압니다.
“그랬죠. 그런데 서울시장선거는 시민을 위한 일꾼을 뽑는 것이지, 인기인 투표를 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인기란 것은 금방 변하죠. 그때 저는 인기투표를 하면 안 된다고 반대했어요. 그런데 열린우리당이 먼저 인기투표를 시작했죠. 그러니 상대당도 급하니까 인기투표로 맞받아쳤고.”
“노 대통령, 지금도 늦지 않았다”
▼ 총선에서 떨어진 뒤 어떤 제의가 있었나요.
“사실 몇 군데 정부산하기관 이사장 제의가 있었어요. 연봉이 1억7000만원 안팎에 장관급에다 임기 3년이 보장된다고 해요. 어차피 ‘낙하산’ 소리 나올 거 아닙니까. 일단 발해 소설을 다 쓰고 난 후에 생각해보겠다고 했어요.”
▼ 만일 다음 대선에 출마하는 후보가 도와달라고 부탁하면 어떻게 할 겁니까.
“지금 뭐라고 말했다가 틀어지면 또 거짓말하는 것이니까 ‘몰라요’라고 할래요. 제가 발해 소설 마치고 나서 왜 쉬지도 않고 인도에 가려 하는지 아세요? 외부에서 끊임없이 연락이 오거든요. 핑계 댈 길이 없잖아요. ‘글 쓰고 있다’고 하면 먹혀듭니다. 다음 작품으로 불교 소재를 구상하고 있는데 기회가 되면 달라이 라마도 만나고 싶어서 가는 겁니다.”
▼ 노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행복한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년이면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눈을 크게 뜨고 국민이 뭘 원하는지만 따라가면 됩니다. 노무현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서 살면 됩니다. 자기를 가장 낮은 자리까지 내려놔야 해요.”
▼ 대통령은 남이 자신을 못살게 군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요.
“사람은 늘 ‘나는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화도 내고 그러지요. 그런데 남 탓을 하는 순간, 문제가 생깁니다. 자기가 항상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기 이익을 위해 살아가면서 백성을 위해서 살아간다고 주장하는 것,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남 탓을 하는 것, 어찌 보면 사람의 본성 같은 것인데 지도자는 이 세 가지를 버려야 삽니다.”